그 말 내가 전할게

  • 지은이: 길상효 글, 송은경 그림

2019 1차 문학나눔 도서 선정

바람에게 부탁한 상실의 아픔, 이젠 따뜻함이 되어 돌아와요

고개를 숙인 채 애써 속삭인 ‘나는 잘 지내’라는 말. 당신은 여기 없지만, 그럼에도 그 말을 고장 난 전화기에 대고 조심스레 해봅니다. 그 말이 바람에 실려 가고, 그 말을 담은 바람이 하는 일을 하나하나 함께해봐요. 결국 시간이 흘러 그 말이 자신에게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섬세한 감정으로 조용히 따라가요. 시간을 양분 삼아 단단해져 온 그 말, ‘나는 잘 지내’. 소중한 사람에게 했던 그 말이 나에게 다가와 그때의 아픔을 어루만져줄 테니까요.

쌓여 가는 그리움이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곳. 그곳에 전화기가 있어요

일본의 어느 작은 바닷가 마을 언덕에 ‘바람의 전화’가 있어요.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으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누군가 전화기를 가져다 놓았어요. 실제로는 작동이 안 되는,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은 전화기였어요.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보고 싶다고, 나는 잘 지낸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마음 깊숙한 곳, 그곳에 있는 말을 꺼낼 수 있는 공간. 그곳에 놓인 전화기.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믿음과 안정을 가질 수 있었거든요. 마치 고해성사하듯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을 밖으로 내보이는 것, 그러한 행위는 생각보다 커다란 용기가 필요해요. 슬픔과 그리움이 그러한 용기를 주저하게 할 수는 없기에, 사람들은 그곳에 놓인 전화기를 찾아가요.

 

이름만 불러도 마음 뭉클해지는 존재, 엄마.

엄마, 나는 잘 지내고 있어요

엄마를 잃은 한 어린 소녀가 고장 난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해요. ‘엄마…, 나는 잘 지내.’ 나는 잘 지낸다는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지내보겠다는, 스스로를 향한 다짐과도 같아요. 그 말을 실은 바람은 엄마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하려는 소녀의 바람을 당장에 들어주지 못하겠노라 양해를 구해요. 성급한 위로를 건네지 않아요. 시간을 달라고 부탁해요. 꽃가루를 날리고, 김매는 이들의 땀을 식히고, 가을 이파리들을 거두고, 명태를 더 차지게 말리고 가겠노라 말해요. 바람은 살랑살랑 부는가 하면 비바람을 몰고 매섭게도 불어요. 자연과 인간을 영글게 하는 시간은 그저 달래고 어루만지기만 하지 않으니까요. 시간을 달라는 바람에게 자신의 말을 맡긴 소녀 역시 그 시간 동안 어루만져지고 또한 스스로를 단단하게 다져요. 상처를 회복하는 힘은 결국 자신에게서 나오기에, 단지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는 사실을 바람이 말해주고 있어요. 엄마처럼 어른이 된 소녀는 이제 미소를 띄며 그날의 그 말을 다시 들을 수 있어요. ‘나는 잘 지내.’ 이제 이 말은 엄마가 딸에게 해주는 응원이 되어 딸의 마음을 사랑으로 가득 채워줘요.

작은 바닷가 마을 언덕에 누군가 전화기를 가져다 놓았어요. 지금은 곁에 없지만 내 마음속에, 그리고 내가 바라보는 모든 사물에 담겨 있는 소중한 이를 그리워하는 사람을 위해서예요. 전화기를 들고 아픈 마음을 속삭여요. 바람이 전해줄 거란 믿음으로 소중했던 이에게 못다 한 말을 해요. 그 말은 바람을 타고 천천히 조용히 전해져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단단해져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줘요.

글쓴이 길상효

엄마가 되어 어린이 책을 다시 손에 쥔 이후로 어린이, 청소년들과 함께 독서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점동아, 어디 가니?』, 『김치 가지러 와!』, 『최고 빵집 아저씨는 치마를 입어요』, 『해는 희고 불은 붉단다』, 『골목이 데려다줄 거예요』, 『아톰과 친구가 될래?』 등이, 옮긴 책으로는 『달려라 왼발자전거』, 『산딸기 크림봉봉』, 『살아남은 여름 1854』, 『하나만 골라 주세요』, 『행복해라, 물개』, 『못된 녀석』, 『안아 드립니다』 등이 있다.

그린이 송은경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국내외에서 여러 전시를 했습니다. 이야기를 상상하고 그림으로 표현하는 순간을 즐기며, 늘 함께하고 싶은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합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는 『까만 귀 토끼의 선물』, 『내가 도와줄게!』, 『우리 꼬리낚시 가자!』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