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술친구

  • 지은이: 김흥식 글, 고정순 그림

2019 1차 문학나눔 도서 선정

아빠의 주먹은 매일매일 술을 마신다

매일 술을 마시는 아빠의 주먹 아래에서 사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빠의 주먹과 가장 친한 술친구인 아빠의 발에게 매일 두들겨 맞고, 아빠의 혓바닥에게 매일 욕을 들어야 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는 아빠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태어나 보니 아빠가 술 취한 주먹과 발과 혓바닥을 가진 사람인걸요. 그럼 이제 아이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매일 취한 아빠의 주먹과 발과 혓바닥을 물려받아야 하나요? 책 속 아이의 소리 없는 물음에 우리는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 걸까요.

선택할 수 없는 아빠의 폭력, 저항할 수 없는 아이의 고통

술 취한 주먹을 가진 아빠의 아들로 살아간다는 것

술 취한 아빠의 주먹은 힘이 세고, 혓바닥은 욕설을 내뱉고, 발바닥은 거칩니다. 아이는 아빠에게서 도망치고 싶습니다. 문밖으로 달아나고 싶습니다. 하지만 혼자 도망갈 수는 없습니다. 엄마를 지켜야 하니까요. 하지만 먼저 도망간 사람은 엄마였습니다. 이제 아이에게 남은 건 더욱 힘이 세진 아빠의 주먹뿐입니다. 저항할 힘이 없는 아이는 그렇게 매일 술 취한 아빠의 주먹을 견뎌내며 자라야 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이제 아빠의 주먹은 힘이 약해집니다. 그리고 아이에게도 힘 있는 주먹이 생깁니다. 아이도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주먹도, 발도, 혓바닥도 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빠와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마음먹는 대로 될까요? 이제 어른이 된 아이는 매일 발버둥 쳐야 합니다. 아빠와 같은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서요. 아무리 아빠처럼 되고 싶지 않아서 애를 써도, 보고 듣고 자란 게 아빠의 주먹이고 아빠의 혓바닥이고 아빠의 발이니까요.

그래도 아빠처럼 취할 수는 없기에, 죽어도 아빠처럼 살 수는 없기에

알코올 중독은 습관성 음주와 폭음으로 술을 조절하는 데 장애가 생기는 질환입니다. 이는 가정 폭력과 아동 학대 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폭력은 대물림됩니다. 가정 폭력을 겪으면서 자란 아이는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어 갑니다. 폭력의 대물림이 단순히 한 가정의 문제일까요? 알코올 중독인 아빠에게 폭력을 당하며 자란 아이가 아빠와 똑같은 어른으로 자란다면, 그 아이에게만 잘못을 물어야 할까요? 가정 폭력은 더는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사회 문제입니다. 어느덧 아이는 아빠에게서 벗어나 취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지만, 아빠처럼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아이가 몸부림칠 때, 우리는 어디 있었나요. 무엇을 했나요. 이 책은 무관심했던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이 바로 두 눈과 귀를 열어 어디선가 홀로 몸부림치고 있을 수많은 아이의 목소리에 응답할 때가 아닐까요.

아빠의 주먹은 술을 마신다. 매일매일 술을 마신다. 아빠의 주먹에게는 술친구가 여럿 있다. 아빠의 발과 혓바닥이 가장 친한 술친구였고, 자주 함께 술을 마셨다. 나는 방구석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오들오들 떨며 취할 수 없는 내 주먹과 내 발과 내 혓바닥을 저주했다. 문밖으로 달아나고 싶었지만, 나는 엄마 곁을 지켰다. 하지만 문밖으로 먼저 나간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가 사라지자 아빠의 주먹은 더욱 힘이 세졌다.

글쓴이 김흥식

글과 그림 사이에서 고민하다 엉뚱하게 경영학을 전공했다. 돌고 돌아 결국 지금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 한겨레 아동문학 작가학교에서 공부했고, ‘동문서답’의

동인들과 함께 신나게 동화를 쓰고 있다.

 

글쓴이의 말: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용기를.

우리 사회는 가정 폭력 피해 아동을 향한 안쓰러운 시선 뒤로 그 아이 또한 가해자와 똑같은 어른으로 자랄 거라고 낙인 찍는 무자비한 시선을 감추고 있습니다. 폭력은 대물림될 것이라고 당연하게 여기는 시선 또한 폭력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폭력은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고, 똑같은 어른으로 자라지 않을 수 있다고도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린이 고정순

서울의 쓰레기 매립지 근처에서 태어나 인천 소래포구 어느 오락실 뒷방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열 살이 되던 해 다시 서울로 올라왔고, 그렇게 한 시절을 영등포에서 보냈다. 지금은 사교적이며 인내심 강한 고양이 두 마리와 서울 변두리에서 살고 있다. 주로 그림책을 만들며 지낸다. 동네 골목을 산책하거나 친구들과 수다 떠는 일을 좋아한다. 글로 쓸 수 없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그림으로 그릴 수 없는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지만 언제나 실패한다. 그림책 『철사 코끼리』, 『가드를 올리고』, 『엄마 왜 안 와』, 『넌 어느 지구에 사니?』, 『최고 멋진 날』, 『솜바지 아저씨의 솜바지』, 『슈퍼 고양이』, 산문집 『안녕하다』 등을 쓰고 그렸다.

 

그린이의 말:

아빠를 떠올리면 술을 마시던 뒷모습만 생각난다는 친구가 있다.

그림을 그리며 그 친구의 마음 곁에 조금 다가가고 싶었다.

그 마음이 간절할수록 『아빠의 술친구』 속 주인공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이다.

오늘도 어려운 한 걸음을 내딛는 친구들에게 그리고

나의 소중한 친구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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