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삽니다, 다정빌라

  • 지은이: 김우주 글, 쏘우주 그림

돌아가고 싶은 어제와 낯선 내일

그 시간의 경계에서 만난 다정한 이웃들

다정, 상실감과 두려움 속에서 한 발 앞으로 디딜 힘

『오늘부터 삽니다, 다정빌라』는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동화 부문과 눈높이아동문학상을 수상한 김우주 작가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고학년 장편 동화다. 작가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미련, 낯선 곳에 대한 거부감으로 새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주인공 우정의 심정을 생생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렸다. 또 그 마음들이 다정이란 이름을 만나며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도 살펴본다. 이 책은 감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다정의 모양과 주체를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게 한다. 다정을 건네는 일은 쉽지도 않고 티가 많이 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런 너그러운 순간들이 모여 어린이의 세계를 넓힌다. 이 책은 그런 다정의 힘을 담담히 전한다.

다정으로 채워지는 마음속 빈자리

다정빌라에 이사 온 뒤로 우정은 매일같이 예전 동네로 돌아갈 생각뿐이다. 낡은 빌라가 싫기도 하지만, 이사하면서 놓고 온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소중한 친구들, 친구들과의 아지트였던 자신의 방…… 익숙하고도 아늑한 세계를 한꺼번에 빼앗겼다. 그렇게 좀처럼 다정빌라에 머무르지 못하던 우정의 마음을, 예상치 못한 다정들이 조심스럽게 흔들기 시작한다.

화단을 가꾸는 ‘소쿠리 할머니’는 화단 밖에서 서성이는 우정을 화단 안으로 초대해 소쿠리 가득 깻잎을 담아 준다. 다른 세대의 누군가로부터 환대받는 경험은 우정의 마음에 깻잎 향처럼 신선하게 남는다. 다정 공부방의 떡볶이 파티에서는 배달 음식이 아닌 ‘다정 샘’이 직접 만든 떡볶이를 먹는다. 떡볶이가 천천히 끓는 동안 퍼지는 온기에, 우정의 마음이 살짝 녹아내린다. 아침부터 뛰노는 대가족 집 아이들, 아이들에게 시끄럽다며 호통을 쳐 대지만 실은 그 아이들의 두 번째 보호자나 다름없는 ‘까칠 할아버지’가 일으키는 소란도 우정의 귓속으로 스민다. 이 사소한 감각들은 점점 우정이 건네받은 다정과 함께 아늑한 일상으로 변해 간다.

이렇듯 다정은 한 번에 상황을 바꾸지 않는다. 친근히 오고 가는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 스치듯 마주친 따뜻한 시선이 겹치며 새로운 환경에 대한 경계심을 조금씩 느슨하게 만든다. 『오늘부터 삽니다, 다정빌라』는 ‘적응’이 그저 환경을 견디는 일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건네받은 다정으로 마음의 빈자리를 다시 채워 가는 과정임을 보여 준다.

어린이의 세계를 조금씩 넓히는 다정

처음 다정빌라에 이사 온 뒤 우정은 이사 과정에서 잃은 것에 대해 생각하느라, 낯선 환경에서 스스로를 지키느라 예민해져 있다. 그래서 다정빌라의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가지고 거리를 둔다. 하지만 건네받은 다정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우정은 자기도 모르게 다정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어 간다.

대가족 집 철없는 둘째가 빈집에 몰래 들어갔다 아빠에게 혼날 위기에 놓였을 때, 우정은 얼떨결이지만 자기를 만나러 온 거라며 둘째를 감싸 준다. 그 후 계단에 짐을 내놓는 민폐 주민 ‘소쿠리 할머니’의 화단을 철거하려는 굴삭기를 막아서기도 하고, 까칠한 참견쟁이 수호가 아끼던 강아지를 찾으러도 다니기도 한다. 이런 우정의 행동들은 건네받은 다정에 대한 단순한 보답을 넘어 능동적으로 관계를 만들어 가는 태도로 발전한다. 그리고 그런 관계 맺음 속에서 우정은 타인에 대한 이해를 터득한다. 철없어 보이던 둘째는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한 여린 아이였고, 민폐 주민 소쿠리 할머니는 소중히 기른 채소를 이웃에게 조건 없이 나누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수호의 까칠함은 우정 자신과 비슷한 상실감에서 나오던 태도였다.

화려하거나 대단치도 않은 다정이지만, 우정이 베푼 다정들은 차곡차곡 쌓여 더 큰 다정으로 우정에게 돌아온다. 우정은 더 이상 ‘낯선 환경에 떠밀린 아이’가 아니라, 관계를 스스로 만들고 확장하는 아이로 성장한다.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다정의 힘은 바로 이런 것이다. 건네주고 받으며, 한 어린이의 세계를 넓히는 힘.

낭만적인 요소로 가득 찬 공간, 다정빌라의 매력

우정에게 다정빌라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다. 페인트칠이 거의 벗겨진 빌라 이름, 엘리베이터가 없는 층계, 계단에 아무렇게나 쌓인 잡동사니, 재개발 소식에 불 꺼진 빈집들까지 모든 것이 불편하게 보인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이사이에 어린이들의 눈을 반짝이게 할 매력적인 탐험 요소가 가득하다.

다정빌라엔 화단이 있다. 관리 인력이 따로 있는 아파트 조경과 달리, 이곳의 식물은 모두 입주민인 ‘소쿠리 할머니’의 손에 자란다. 근사한 정원은 아니지만 그래서 어린이에게 스스로 무언가를 발견할 여지를 제공하기도 한다. 다정 공부방 역시 특별한 장소다. 책상이 네 개뿐인 작은 교실, ‘다정 샘’이 직접 끓이는 떡볶이 냄새가 가득한 이 공간은 아이들에게 더없이 포근하고 안전한 공간이다. 잘 꾸며진 놀이터는 없어도 아이들은 마당에서 자전거를 타고, 빈집이 된 옛집을 함께 청소하고 꾸미며 빌라 안에서 자신들만의 영역을 확보해 간다.

다정빌라는 어린이 친화적인 공간이다. 층계를 오르내리고, 화단의 식물 냄새를 맡고, 평상에 앉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순간까지. ‘지루하고 불편한 낡은 빌라’, 다정빌라에서 우정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웃들의 보호를 받으며 새로운 세상을 안전히, 그러나 완전히 탐색한다. 그렇게 새로운 감정과 상상을 경험하며 낯섦은 호기심이 되고, 그 과정에서 우정은 새로 만난 세계 속 자신의 자리를 찾아 간다.

넓고 반짝이는 집에서 낡고 답답한 ‘다정빌라’로 이사 온 우정. 이름만 다정빌라인 이곳이 하나도 다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마음에 안 드는 건, 자기네 집도 아니면서 자꾸 빌라에 드나들며 참견하는 같은 반 윤수호! 그렇게 다시 예전 집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던 우정 앞에, 빌라 주민들과 수호의 숨겨져 있던 이야기가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다정하지 않은 다정빌라

다시 돌아가고 싶어

새로운 친구는 필요 없어

자꾸만 마주치는 아이

소쿠리 할머니

다정 공부방

수상한 둘째

소쿠리 할머니의 가족

401호의 주인

둘째를 돕다

부러진 의자

시간의 경계

화단에 나타난 굴삭기

윤수호가 지키던 것

호호 찾기 대작전

모두에게 다정한 다정빌라

작가의 말

 

글쓴이 김우주

제9회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동화 부문으로 등단했다. 제31회 눈높이아동문학상을 받았고, 2023년 아르코창작기금 발간지원에 동화가 선정되었다. 동화책 『지금은 여행 중』, 『초초숲에서 만나』, 『오늘의 분실물』, 『악당을 지켜라』 등을 썼다. 어린이를 믿는 글을 쓰고 싶다.

그린이 쏘우주

사람 사는 유쾌한 이야기를 담은 그림을 좋아하며 그린다. 『민탐정 추리교실 1』, 『곤충 탐정과 벌꿀 도둑』, 『우리 반 마틴 루터 킹』에 그림을 그렸고, 『유니시티 보안관 디어루』, 『3모둠의 용의자들』의 표지 일러스트를 작업했다.

Instagram @ssoplanet

차에서 내려 우리 가족이 새로 살 집을 올려다보았다. 한눈에 봐도 무척 낡은 빌라였다. 한쪽 벽면에 적힌 ‘다정빌라’ 페인트 글자는 무척 희미해서, 눈을 가늘게 떠야만 겨우 보일 정도였다. (9쪽)

예전의 내 방은 무척 넓고 깨끗했다. (…) 내 방만큼 넓고 예쁜 방을 가진 친구는 없었다. 친구들 모두 내 방을 부러워했고, 나도 자랑스러웠다. (13쪽)

나는 틴케이스를 다시 꺼내 예전 내 방과 똑같은 공간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모든 게 억울했다. 친구들과 억지로 헤어진 것도, 편안했던 내 방과 소중한 물건들을 모조리 빼앗긴 것도. (25쪽)

다정 공부방에 간 첫날, 책상에 앉아 있는 윤수호를 보았다. 다정빌라에 살지도 않는다는 아이가 왜 여기에 있을까. 윤수호도 나를 보고 놀란 눈치였다. 하긴, 곧 다시 이사 간다면서 여기 공부방을 다니는 게 말이 좀 안 되긴 했다. 뭔가 들켜 버린 기분이다. (49쪽)

“여기가 곧 없어진다는 거지? 그럼 우리는?”
“이사 가야지.”
아빠가 별 감흥 없이 대답했다.
“진짜? 이사 간다고? 얼른 재개발되면 좋겠다. 아빠…… 나는 정말 여기가 싫어.” (57쪽)

내 마음도 아직 다정빌라에 이사 오기 전과 후, 두 시간 사이에 걸쳐 서 있는 것 같다. 예전 집과 친구들에게로 돌아가는 날을 꿈꾸며 기다리지만, 엄마는 이쪽 시간에서 내 희망을 딱 잘라 냈다. 어서 넘어오라고. 여기서 새롭게 지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94~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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