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리을 이야기

  • 지은이: 신소영

리을로 말하는 몽상가의 사랑법

청소년 로맨스 시리즈 ‘달콤한 숲’의 두 번째 책 『나의 리을 이야기』는 동화와 시를 써 온 신소영의 첫 청소년 소설이다. 2021년 비룡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단어의 여왕』의 주인공이 여러 단어를 수집해 내면세계를 넓혔다면, 이 책의 주인공 오율은 ‘ㄹ’이라는 한글 자음 하나를 여기저기에 비추어 보며 세상을 탐구한다. 케이팝, 시, 그리고 “가장 예쁜 리을” 사랑. 세 가지 리듬이 만나 만들어 내는 몽상의 기록을 따라가 보자.

오율은 케이팝을 듣고, 도서관에서 시를 읽고, 공중에 뜬다. 누군가에겐 싱겁거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오율에게는 세상을 버티는 방법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을오’라는 이름의 소년이 나타난다. 이름 속에 ‘ㄹ’을 품은 그 아이가 공중에 뜨는 걸 본 순간, 오율의 리을은 새로운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한다.

 

언어의 리듬으로 기록되는 성장의 진동

아무도 모르게 공중으로 15센티미터 떠오르는 아이가 있다. 이 책의 주인공 ‘오율’이다. 『나의 리을 이야기』는 케이팝과 시, 그리고 ‘리을’이라는 글자를 매개로 현실을 견디는 한 청소년의 성장통을 환상적인 방식으로 그린 소설이다.

학교 폭력과 가난, 불안정한 가족 관계에 시달리는 오율은 언제나 이어폰을 꽂고 케이팝을 듣는다. 케이팝을 빼고는 전부 소음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랭보의 시집을 늘 가지고 다니며 펼쳐 보기도 한다. 시집을 읽으면 공중 부양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오율은 자신과 비슷한 농도의 현실을 살아 내고 있는 을오를 만난다. 두 사람은 음악과 시, 그리고 각자의 리듬을 통해 마음을 나누며 서로를 보듬는다.

책은 청소년기의 외로움과 상처, 그리고 사랑과 회복을 섬세히 다룬다. 그 과정에서 오율을 일으켜 세우는 가장 큰 힘은 단연 리듬으로서의 언어다. 오율은 케이팝 가사, 랭보의 시, 고려가요까지 이어지는 언어의 리듬 속에서 세상과 자신을 연결하는 새로운 ‘리을’을 찾아 나간다. 그렇게 ‘무릎 꿇은 사람 모양’이었던 ‘ㄹ’은 점차 흐름이자, 반항이자, 튀어 오르는 힘이 된다. 이처럼 작가는 적확한 문법으로는 닿기 힘든 청소년기의 감정을, 리듬과 발음으로 번역해 감각적으로 우리 앞에 펼쳐 낸다.

나만의 리듬, 나만의 ‘리을’

오율은 소외와 상처 바깥에서 자신만의 ‘리을’을 찾는다.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말, 소외된 채 듣는 학교의 소음에서 벗어나 케이팝을 듣는다. 쾨쾨한 집에서, 비린내 나는 엄마의 설렁탕집에서 발길을 돌려 도서관으로 가 랭보의 시를 읽는다. 그렇게 ‘리을’, 즉 자신만의 규칙을 만들어 간다. 오율에게 ‘리을’은 흐름이고, 힘이고, 꿈이다. 그리고 나와 세상, 오늘과 내일 사이를 잇는 작은 질서다.

이런 ‘나의 리을’을 어느 청소년이라도 가지고 있다. 어떤 소리, 어떤 움직임, 어떤 물체. 그에 대한 감각이 마음속 깊은 곳까지 밀고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그것이 마음에 자리 잡으면 각자의 ‘리을’이 된다. 『나의 리을 이야기』는 그런 자기만의 리듬을 찾는 과정을 보여 준다. 책은 말한다. 세상이 이해되지 않을 때, 내일로 건너갈 용기가 나지 않을 때,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거대한 해답이 아니라 작은 리듬, 그러니까 ‘나만의 리을’이라고.

현실 위에서 15센티미터 떠오르는 법

오율이 사는 세상은 늘 바닥과 가깝다. 반지하 집, 설렁탕집 주방 대야에 고인 핏물, 학교 일진 언니들이 파 놓은 검은 구덩이. 오율은 그 ‘바닥’으로부터 15센티미터 떠오른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그 미세한 높이에 있다. 폭력과 가난은 보통 ‘커다랗게’ 설명되지만, 실제 생존은 ‘조금이나마’ 떠 있는 시간이 이어 붙여져 이루어진다. 오율은 눌리지 않을 높이를 확보한 뒤 숨을 고른다. 그렇게 커다란 구원 대신 최소한의 존엄을 확보한다.

날지 않는다. 다만 떠오른다. 이것이 오율을 버티게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오율은 더 높이 떠오르기 위해 분투하지 않는다. 반복해서 낮게 떠오르며 오히려 안전히 착지하는 법을 배워 나간다. “고요히, 높이 튀어 오르는 성질.” 책 속에서 오율이 마지막으로 알아낸 리을이다. ‘낮게 떠오르는’ 대신 ‘높이 튀어 오른다’라는 발견은 몽상을 놓지 않고도 현실을 살아가겠다는 선언이다. 이처럼 『나의 리을 이야기』 청소년들에게 때로는 흔들리고 초라한 모습이더라도 ‘지금, 여기’를 딛는 법을 보여 준다.

두 사람의 리듬이 만나는 순간

을오는 오율의 세계를 흔드는 인물이다. 오율의 리듬을 맞받아치며 때로는 깨뜨리고, 때로는 증폭시킨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그리고 서로의 리듬을 새로이 만들어 간다. 서로 다른 박동이 만나 만드는 새로운 박자, 그것이 두 사람이 발견한 구원의 형태다. 상처를 공유하는 대신 리듬을 맞추며 연결된다. 이해하는 대신 청취하는 관계. 이 책이 제시하는 연대의 문법이다.

오율과 을오가 주고받는 음악과 시는 둘만의 암호이자 약속이다. 현실에서 잠시 비켜나 숨을 고르게 하는 비밀 좌표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리듬을 청취하며 공명한다. 사랑이 세상을 바꾸지 못한대도, 둘이 함께 진동하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달라진다. 『나의 리을 이야기』는 그런 로맨스의 감각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언젠가 독자에게도 문득 어떤 음악이나 문장에서 자신만의 ‘리을’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때 이 책이 ‘리을’을 불러내는 좌표가 되어 줄 것이라 기대한다.

 

‘달콤한 숲’은 청소년의 시선과 언어로 그려 낸 로맨스 소설 시리즈다. 사랑하기도, 상처받기도 좋은 십 대 시절. 설렘과 불안, 질투와 이해를 오가며 로맨스를 통해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때로는 달콤하고 가끔은 씁쓸한 사랑을 맛보며 더 다채로운 ‘나’를 발견해 갈 청소년들을 응원한다.

 

익숙한 멜로디와 리듬 위에 얹어진 노랫말들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관통하고, 위로하며, 마침내 일으켜 세우는지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 낸다. 이 책은 K-pop이라는 장르를 넘어 청소년 독자에게 가장 다정한 응원가가 되어 줄 것이다.

―강민혁(밴드 CNBLUE 드러머, 배우)

 

지금 전 세계에 울려 퍼지고 있는 K-pop은 처음엔 이 책의 주인공 오율처럼 작은 꿈을 품고 고난 속에서 답을 찾는 몽상가들에게서 시작했다. 끊임없이 고뇌하고 결국 그 힘으로 세상에 울려 퍼질 미래의 모든 ‘리을 이야기’를 응원한다.

―김도훈(작곡가, RBW 대표 프로듀서)

 

처음 작사를 시작했을 때가 생각난다. 대중에게 힘이 될 좋은 가사를 써야겠다는 호기는 이제 정말로 대중을 위로하는 가사가 되었다. 지금도 ‘리을’ 같은 자신만의 단어를 가지고 꿈을 키워 나갈 많은 청소년에게 이 책이 큰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황성진(작사가, KOMCA 이사)

 

보이지 않는 현실의 벽이 절망적이고 깨지지 않는 것이라 해도, 그 벽을 단숨에 뛰어넘게 하는 시 한 구절, 가사 한 줄의 힘. 지금, 여기 이곳에서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게 하는 ‘리을’의 힘을 더 오래 믿어 보고 싶다.

―구현우(시인, 작사가 구태우)

 

오율은 언제나 이어폰을 끼고 케이팝을 듣는다. 시간이 날 땐 ‘움도서관’에서 랭보의 시집을 읽는다. 그러면 15센티미터 공중 부양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공중 부양 이후로 오율은 ‘ㄹ’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을오라는 남자아이를 만난다. 이름에 ‘ㄹ’이 들어 있는 그 아이가 공중에 뜨는 걸 목격하고 관심이 가기 시작한다. 케이팝 대신 인디밴드를 좋아한다는 아이. 검은 후드를 푹 뒤집어쓰고 다니는 아이. 오율은 그 아이에게서 어떤 ‘ㄹ’을 발견하게 될까?

 

감각

혼자

도망

공중걷기

느릅나무

골목

고백

마술

악보

공중앞차기

악기

달물결

바다

구토

피멍

붕괴

공중잠자기

리을세포

상자

난간

옥상

나는 리을한다

 

신소영

리을을 발견하며 소소히 걸어가는 작가. 동화 『단어의 여왕』, 『길모퉁이 구름김밥집』, 『고래 그림 일기』 등과 시집 『물안경 달밤』, 『물모자를 선물할게요』, 『그 숲에서 당신을 만날까』 등을 썼다. 목일신아동문학상과 김현문학패 외 다수의 상을 받았다.

 

18쪽_오늘은 ‘861-ㄹ326지’의 위치로 가자. 움도서관에 있는 나만의 좌표로 가자. 더 이상 발붙이고 싶지 않은 여기. 여기를 뜨기 위해 그 좌표로 가자. 그곳엔 ‘나의 리을’이 있다.

45쪽_리을. 나는 단지 한 단어를 중얼거린다. 등에서 먼저 느낌이 온다. 등에 멘 가방에는 랭보의 시집이 들어 있다. 점점 발바닥에 느낌이 온다. 나는 공중으로 떠오른다.

68쪽_나는 케이팝의 가사 한 줄을 쓰고 싶다. 그 한 줄을 새롭게 쓰고 싶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한 줄, 아직 누구도 창작해 내지 못한 한 줄. 나는 그 한 줄을 쓸 것이다. 아! 나는 드디어 꿈을 가졌다. 리을을 새롭게 발견했다. 나의 리을, 꿈이다.

92~93쪽_랭보의 시를 읽는다. 시 세 줄이 나를 공중 부양 시킨다. 나의 발바닥은 물웅덩이를 창조한다. 그 위에 띄울 여리고 푸른 배도 창조한다. 슬픔을 아름다움으로 창조해 내는 감각. 나의 발바닥은 힘을 느낀다.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

가사 한 줄을 공중에서 중얼거린다.

142쪽_우리는 흐늘거리는 해조류 같다. 미끄러운 바위에서 곧 떨어질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삶이라는 바위에 악착같이 붙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로맨스다.

174쪽_우리는 난간에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책장에 꽂힌 책들이 고요히 눈을 뜨고 있었다. 어떤 알 수 없는 빛들이 책들의 눈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아! 나의 리을이 있었다. 빛들 사이에서 나의 리을이 비행체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189쪽_우리의 날개는 서로를 안고 공중으로 떠올랐다. 바다의 푸른색이 비치는 날개였다. 꿈의 무늬가 출렁이는 날개였다. 절벽 위에서 서로를 구조하는 로맨스의 날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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