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이지만 걱정 마세요

  • 지은이: 최상아

1944년 러시아에 뚝 떨어진 열일곱 발레리노와 80년을 떠돈 유령

시공간을 건너온 안부, 오늘을 홀로 버티는 당신에게

부모님에 이어 유일한 버팀목이던 할머니마저 떠나보낸 열일곱 발레리노 수혁. 슬픔을 추스를 틈도 없이 현실을 버티던 어느 날, 벽장 속 오래된 반지를 발견한다. 그 반지에서 80년을 떠돈 유령 발레리노, 이고르가 나타나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한다. “1944년으로 가서 내 약혼자를 찾아 주게.” 거절할 이유가 충분한 부탁이지만, 유명 발레단 입단을 도와주겠다는 조건으로 수혁은 이고르와 계약을 맺는다. 그렇게 도착한 낯선 땅에서 이고르의 약혼자를 찾아 헤매던 수혁. 독립운동가 선화와 여진을 만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독립운동의 한복판에 선다. 과연 수혁은 이고르의 약혼자를 찾고, 현재로 돌아올 수 있을까?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을 잇는 따뜻한 상상력

고등학생 발레리노, 시간을 건너 독립운동을 돕다

SF 단편 「두근두근 딜레마」로 한낙원과학소설상 우수작에 선정되며 상상력과 서사를 인정받은 최상아 작가가 첫 청소년 역사 판타지 『1944년이지만 걱정 마세요』를 선보인다. 열일곱 발레리노 수혁은 그해 여름,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마저 떠나보낸다.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마음으로 장례를 마친 어느 날, 벽장 속에서 오래된 은반지 하나를 발견한다. 무심코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는 순간, 강한 빛과 함께 80년 동안 약혼자를 잊지 못한 유령 발레리노 이고르가 눈앞에 나타난다. 그런데 이고르의 부탁은 상상조차 못 한 것이었다. 1944년으로 가서 자신의 약혼자를 찾아 달라는 것.

애도할 틈도 없이 연습을 이어 가야 했고, 학교에서는 친구들의 괴롭힘까지 견뎌야 했던 수혁은, 유명 발레단 입단을 돕겠다는 제안에 이고르와 계약을 맺는다. 과거의 러시아로 향한 수혁은 독립운동가 선화와 여진을 만나며 예상하지 못한 여정을 시작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의문이 커져 간다. 이고르는 왜 수혁을 수호천사의 이름인 ‘라파엘’이라 부르는 걸까. 이고르는 왜 80년 동안 약혼자를 찾지 못했을까?

“독립 자금을 모아야 하는 일을 끝내면, 넌 뭘 하고 싶어?”

현재의 소년, 과거의 여성 독립운동가를 만나다

1944년 러시아에서 수혁은 독립운동가 선화와 여진을 만난다. 처음에는 과거를 잠시 거쳐 가는 여행이라 여겼지만, 칼을 든 남자를 막아서고, 발레로 다져진 몸으로 위험을 돌파하며 독립운동가의 삶을 마주하게 된다. 무대 위에서만 쓰인다고 믿었던 자신의 재능이 누군가를 살리는 데에도 쓰일 수 있음을 처음으로 깨닫는다.

선화와 여진의 모습에는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이 담겨 있다. 여진은 해방 후 과학자가 되기를 꿈꾸는 학생이었고, 선화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평범한 미래를 꿈꾸던 여성이었다. 두 사람은 단지 빼앗긴 일상과 미래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선택했다. 조직을 지키고, 독립 자금을 전달하는,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시대를 버텨 낸 이들의 선택은 거대한 역사 뒤에 가려졌던 여성들의 존재를 비춘다.

혼자 남겨졌다고 믿었던 수혁에게도 변화가 찾아온다. 광복 이후 여진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궁금해하고, 과거 러시아 발레단에서 활동하며 받은 돈을 독립 자금에 보태겠다고 먼저 말한다. “이젠 동지니까.”라는 여진의 말과 함께 수혁은 더 이상 과거를 스쳐 가는 손님이 아니라,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진다.

“미처 내게 닿지 못한 말은 ‘라파엘’이었다.”

시간을 건너 끝내 닿은 이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이고르는 수혁을 ‘라파엘’이라 부른다. 수혁은 “왜 자꾸 절더러 라파엘이라는 거예요?”라고 되묻지만, 이고르는 이유를 알려 주지 않는다. 하루라도 빨리 이고르의 부탁을 들어주고 현재로 돌아가고 싶던 수혁은 어느새 자신의 귀환보다 선화와 여진의 안부를 걱정하게 된다. 어느 여름, 자귀나무 꽃 아래에서 문득 여진의 안부가 궁금해질 때, 수혁은 1944년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안다.

그 순간 이고르가 남긴 이름의 뜻도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라파엘’은 대단한 힘을 가진 영웅의 이름이 아니다. 누군가의 부탁을 잊지 않고, 끝내 닿지 못한 마음을 대신 품는 사람의 이름이다.

“어느 불안한 밤, 이 이야기가 여러분을 감싸는 작은 온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절박하게 손을 내밀 때 기꺼이 함께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_작가의 말

열일곱 발레리노 수혁은 할머니를 떠나보낸 직후, 오래된 반지에서 나타난 유령 발레리노 이고르와 뜻밖의 계약을 맺는다. 약혼자를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은 수혁은 1944년 러시아로 시간 여행을 떠나고, 그곳에서 독립운동가 선화와 여진을 만난다. 발레리노와 유령, 그리고 빼앗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한 여정 속에서 수혁은 처음으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벽장 속 반지

과거의 비밀

이상한 계약

현재의 과거

과거의 현재

현실의 미래

결전의 날

라파엘, 수호천사

작가의 말

최상아

단편 동화 「한 사람을 위한 방게 탕수육 그리고 딤섬」으로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청소년 소설 『재관람 카드의 비밀』, 『자아 찾기 ing』, 『푸른 머리카락』(공저)과 동화 『고스트슛 게임』, 『미스 테리 가게』, 『고스트 프렌드』, 『레벨 업 5학년』(공저) 등을 썼습니다.

내일부터 당장 다시 연습을 시작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발레는 하루만 쉬어도 티가 난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연습 걱정이나 하고 있다. 할머니의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아 더 그런 걸까.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11쪽)

 

가까이서 보니 깊게 파인 눈매와 회색 눈동자, 높은 콧대가 이국적이었다. 누가 봐도 외국인 아니, 외국 유령이었다. (15쪽)

 

“라파엘, 나를 돕는다고 약속하면 다 알게 될 것이네.”

“왜 자꾸 절더러 라파엘이라는 거예요?” (26쪽)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몸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높이 뛰어올라 다리를 쭉 뻗었다. 발끝이 남자의 손목을 정확히 때렸다. 칼이 공중에서 원을 그리며 돌다 길바닥에 떨어졌다. (35쪽)

 

나는 여진이가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 알고 싶었다. 독립 자금 모으는 일을 끝내면 뭘 하고 싶을까. 온전히 여진이 자신이 원하는 인생은 어떤 삶일까. (56쪽)

 

“잡념은 내려놓게. 동전보다 좁은 공간을 발끝으로 딛고 중심을 잡으려면 정신부터 붙잡아야 해.” (97쪽)

 

발레단에서 일하는 거라 적게나마 급료도 나온다고 했다. 나는 여진에게 속삭였다.

“돈 받으면 너 다 줄게.”

“왜?”

“당연히 나도 독립운동에 보탬은 돼야 하잖아. 너한테 주면 되지?”

여진이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내가 되물었다.

“뭐야. 갑자기?”

“악수해. 이젠 동지니까. 강 씨, 잘해 보자.” (129쪽)

 

미처 내게 닿지 못한 말은 ‘라파엘’이었다. 우리는 전부 누군가의 수호천사다.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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